임시사이트 국회의원 김종민 김종민 사용설명서 1 페이지 | 국회의원 김종민

종횡무진 김종민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종횡무진 김종민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논산ㆍ계룡ㆍ금산 국회의원 김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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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신의 소통, ‘진짜’ 민주주의를 배우다

    김종민 의원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이인제를 꺾고 논산, 계룡, 금산의 새로운 일꾼이 됐다. 그는 참여정부 세 번째 대변인 출신이다. 시기적으로는 임기 초반. 대선자금 수사와 탄핵 소용돌이가 끝나고 노 전 대통령이 본격적인 국정 운영을 시작하던 때였다. 어찌 보면 실질적인 초대 대변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소통의 최전선에서 소신을 배운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참여정부 대변인은 다들 힘들었습니다. 흔히 언론과 가장 사이가 안 좋았던 정권이 참여정부라고들 하잖아요. 그만큼 언론과 팽팽한 상호견제 관계를 가졌던 거예요. 대변인은 언론을 상대하는 제1선이었기 때문에 너무 언론과 대립각을 세우면 모든 카드가 없어져 버립니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방침을 왜곡하거나 흔들리게 해서도 안 됐습니다. 대통령 방침을 유지하면서도 언론과 소통을 이어나가는 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죠. 그 과정에서 기자들과 논쟁도 많이 하고 대화도 많이 했습니다. 절대 그 시간들이 녹록지는 않았습니다. 촌지 주고 술집 데려가고 내가 가진 생각을 숨기면서 기자들과 편한 관계를 가진 게 아니라, 해야할 말을 하면서도 평화로운 관계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결국, 민주주의가 그런 거더라고요. 민주주의는 모든 이들이 다 똑같은 생각을 가지는 세상을 뜻하는 게 결코 아니에요.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주저없이 밝히면서도 싸우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사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자기 생각을 속이지 않으면서도 상대방과 평화로운 관계를 가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는 특히나 더 그래요. 그래서 청와대에 있는 5년 동안 ‘할 말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 “마이볼!”

    그가 청와대 대변인 자리에서 퇴임한 후 바로 정치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봉하에서 노 전 대통령을 도와 민주주의 2.0을 만들어 국민과의 인터넷 소통에 열중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그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참여정부에서 얻은 국정 경험을 혼자 묻어두는 건 사회적으로도 손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0년부터 정치에 나섰다. 그는 명확한 두 가지의 목표를 시발점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반드시 이뤄내고 싶은 일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지금 은퇴를 앞둔 수백만의 베이비붐 세대가 지역으로 올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창업이 잘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의 일자리 문제는 대기업 고용으로 해결 불가능한 상태거든요. 이 두 가지 모두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과연 누가 이걸 해낼까? 내가 나서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구로 치면 저한테 공이 날라온 거죠. 그럴 때 “마이볼!”이라고 외치면서 공을 잡잖아요. 그렇게 정치를 하게 됐습니다.”
  • 강남과 광화문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그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결과는 낙선이었지만 그 경험은 바로 다음 총선 당선의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부족했던 점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아내의 말 또한 큰 힘이 됐다. “집사람이 이런 얘기를 해줬어요. 만약 논산에 가서 선출직으로 도전할 생각이면 아예 논산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 거기서 살겠다고 작정하고 사람들에게 표를 구해야 한다고요. 제 생각도 그랬는데 미안해서 얘기를 못 꺼냈거든요. 그래서 얼씨구나 이사를 와버렸습니다. 근데 이게 되게 중요한 거예요. 본인이 본인 지역구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놓치게 되는 것들이 분명 있어요. 결국 광화문에서 밥 먹는 사람들, 강남에서 저녁 먹는 이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정서, 그 사람들이 가진 감각대로 활동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지역구 사람들을 만나 매번 상갓집 가고 표 얻고 민원 들어주는 게 전부는 아니죠. 하지만 분명한 건, 지역 국회의원이 계속 서울에 있으면 시민과 어울릴 수 없다는 거예요. 국회의원 신분이기 때문에 명망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기 마련이거든요. 그나마 자기 지역구에 와야만 시민과 직접 호흡할 수 있어요. 그 호흡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죠. 이 사람들이 내 주인이니까, 표 주는 사람들이니까. 시민들이 사는 곳에 같이 살면서 만나고 대화해야 그들의 목소리에 신경 쓰게 됩니다. 아무리 마음을 열어놓으려고 해도 몸이 서울에 있으면 감각이 강남과 광화문에 머무르게 된다는 거죠. 정치인은 사람들의 마음을 인수인계 받아야 합니다. 지역구에 살아야 그 한 땀 한 땀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요.”
  • “열심히 혀.”

    김종민 의원의 지역구(논산·계룡·금산)는 서울시 면적의 두 배 가량에 달할 만큼 넓다. 지역구가 넓을수록 시민들을 만나는 과정이 수고로울 수 밖에 없는 법. 그는 현장에서 주민들을 만나면서 “열심히 혀”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특히 선거 나갔을 때 그 말을 제일 많이 들었죠. 디테일한 이야기는 잘 안하십니다만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다고 봅니다. 자주 사람 만나고 소통을 하라는 얘기잖아요. 결국 본질은, 현장에 있는 시민들과 열심히 대화하라는 거거든요. 예산을 많이 따오고 사업을 크게 벌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소통과 대화가 전제돼있어야만 모든 의정활동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제가 청와대 대변인과 충남 정무부지사를 지내면서 느꼈던 것도 그 점과 맞닿아있어요. 민주주의의 본질은 어떤 목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거예요. 유권자들과 소통을 얼마나 잘하느냐, 그리고 그 소통의 결과를 얼마나 공정하고 충분하게 실현하느냐에 우리 정치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역 주민들이 늘 해주시는 “열심히 혀”라는 말이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땅히 존중돼야 하는, 가치 있는 이야기죠.”
  • 따로, 또 같이 잘 산다는 것은

    김종민 의원이 가족들과 나누고 있는 가훈은 “더불어 살자.”다. 공교롭게도 지금 속해있는 ‘더불어민주당’의 당명과 겹치는 이 슬로건은 그가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부터 이어온 것이다. “더불어 살자”라는 가훈은 그의 의정활동 방향과도 맞닿아있다. 충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김 의원은 특히나 지방 분권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지방 분권에 정말 관심이 많죠. 제가 국회의원 하면서 꼭 이뤄나가야 할 제1의 숙제이기도 하고요. 분권 발전을 비유하자면 이런 거예요. 노래 잘하는 아이는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축구에 관심 있는 아이는 공부보다는 축구를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장사에 소질 있는 애는 밑천 대줘서 식당 한번 해보라고 밀어주는 거죠. 자기가 가진 특성대로, 자기 능력을 잘 발휘해서 인생을 펼치게 하자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각 지역이 독립적으로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전략을 짜주고 권한을 적절하게 나눠주면 낙후됐던 곳에도 훌륭한 발전 동력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따로, 또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인 거죠.”
  • 아주 작은 일

    김종민 의원의 정치 철학은 ‘시민주권주의’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결국 사회는 시민의 생각만큼 간다”는 그의 가치관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시민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야 해요. 그리고 그 생각에 맞추려면 정책적으로 얼마만큼 진도를 나가야 하는지, 또 진도를 나가려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걸 늘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아무리 멋진 계획이 있어도 소용없거든요. 그냥 계속 근사한 계획만 세우다 말게 돼요. 그래서 시민과 만나고 호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설득이 필요한 이들은 설득하고, 귀를 열지 않는 이들은 깨어있게 만들어야 해요. 그게 정치인의 역할이니까요. 대개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엄청 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역설적이지만 국회의원은 아주 작은 일을 해야 됩니다. 바로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 말이에요. 다른 걸 다 떠나 제일 본질적인 일이 그겁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우리 가정에 비유해볼까요? 기본적인 소통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가족이 행복해지지 않는 법이죠. 가장인 아버지가 가족들과 부대끼며 굶고 함께 자고 하면서 노력하는 결과들이 모여 가정 살림이 펴지는 거지, 식구들은 각자 알아서 살고 아버지가 나가서 한탕 돈만 벌어온다고 가정이 행복해지는 게 절대 아니거든요. 더불어 살아야 돼요. 그래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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